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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의 이민짬밥> 나의 모교 방문 낙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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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이래 한국에서의 꽤 긴 외유(外遊) 중, 동창들과 연락이 닿아 2주 전에는 모교인 이화여대를 찾았습니다. 1986년 졸업 후엔 학교를 가본 적이 없으니 거의 30년 만이었습니다.

 

한 세대 가까운 차이가 나는 자식 같은 후배들 틈에 섞여 들어선 교정. 그 형언할 수 없는 낯섦과 이질감이라니… 한 발 한 발 떼놓을 때마다 서걱대며 불편하던 마음이 당혹감으로 변하고 속에서 어기대던 어색함은 이내 황망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세월의 무게에 더께진 쇠락의 기운, 아니면 반대로 더욱 깊어진 품격을 느꼈다거나, 신세대들의 파릇한 생기로 예전보다 발랄함이 더하더라는 식의 감흥이 아닙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선 잔망스러울망정 청춘 특유의 수줍은 생동감을 찾아보기는 힘드니까요. 그렇다고 낭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낙망'스럽기만 했습니다.

 

그 혼란의 정체는 ‘대학 문화의 총체적 상실감’이었습니다. 변한 것이 아니라 홀연히 사라진 그 무엇, 그 자리, 그 정서에 이물(異物)이 들어찬 고약하고 생경한 느낌에 다리에 힘이 탁 풀려 한동안 오도카니 서 있었습니다.       

 

대학의 거대 자본화, 학교 마당과 광장의 폐쇄, 회칠한 무덤에서 만난 젊음의 기이한 초상, 묘한 상실감의 실체는 이 세 가지에 맞물려 있었습니다.

 

‘금남(禁男)의 경계처럼 수줍고 소박했던 이화교가 간단없이 사라진 자리엔 광장도 함께 소멸했고 대신 거대한 철옹 성벽 같은 건축물이 좌우로 솟아 올라 마치 무덤 입구를 연상케 하는 출입문으로 학생들을 무시로 흡입하고 토해 내고 있었습니다.

 

폐쇄된 광장 자리에 새로 올린 건물은 성경에 묘사된 ‘회칠한 무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설익은 지성과 열정의 구호, 너와 내가 한 몸으로 엉기며 공동체적 가치를 확인하던 그 자리, 그 학우들의 함성을 삼켜버린 천장 낮은 건물 안팎으로 ‘자본의 힘’이 화염처럼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대학 곳곳이 장사치들의 난장이 된 현실은 서글펐고 오만한 자본 앞에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확인하는 눈길은 허망했습니다. 

 

최루탄, 물대포, 일명 지랄탄으로도 진압하지 못했던 끈질긴 생명력의 시위대를 간단없이 해체해 버린 거대 자본, ‘돈맛, 돈멋’에 길들여진 세대에게 시위 광장은 무의미하며 그렇게 쓸모 없어진 광장에 '친절한' 자본주의가 깃발을 꽂을 것을 두고 웬 타박이냐고 되쏜다면 할 말 없지만 말입니다. 

 

짙은 화장을 한 학생들이 쇼핑센터를 방불케 하는 스마트 폰 진열장의 새 상품을 기웃거리고 비싼 커피숍에 앉아 정치(精緻)하게 얼굴에 분을 두드리며 숨조차 멈춘 채 색조 화장에 몰입하는 모습이라니…

 

단언컨대 그 공간에서 책을 읽는 학생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최근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전체 다리 길이에 비해 종아리가 짧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톡스로 종아리 둘레를 줄여 더 길어 보이게 하기는 겁이 나고, 그대로 놔두자니 다리에 너무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다.… 44사이즈 열풍에 S라인, V라인, 꿀벅지, 개미허리, 각진 어깨, 심지어 허리-골반 비율, 허벅지-종아리-발목 비율까지 몸에 적용되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세분화되고 엄격해졌다.”

 

그 주에 발행된 <이대학보>에 실린 한 학생 기고 중 일부 내용입니다. 같은 지면에는 '대학생의 절반은 1년 내내 도서관에서 단 한 권의 책도 대출하지 않는다'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학보에는 늦잠을 자느라 전공 수업에 결석하고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병원 진단서를 허위 발급받아 제출했다는 기사와 아예 돈을 주고 진단서 파일을 구입해서 필요할 때마다 거짓 제출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 지경이니 무슨 세탁기나 냉장고 사양(仕樣)도 아니고 젊은이들의 ‘스펙 타령’을 듣는 것만도 지겨운데 내 눈으로 확인한 대학의 현실은 실망을 넘어 암담하게 비칠 밖에요. 비단 이화여대만의 얘기는 아닐 테지요.

 

내가 어쩔 수 없는 ‘꼰대’인지 몰라도, 한국사회 변화에 21년 갭을 가진 물정 모르는 촌스런 호주 사람이라 그런 진 몰라도 요즘 대학생들, 다 그런 건 아니라 해도 너무 철딱서니 없고 한심해 보입니다. 

 

괜히 학교를 찾아가 못 볼 꼴 본 것 같아 속이 상하지만 다시 만나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싶어 두 번 다시 안 갈 거라며 접었던 마음을 펴고 있는 중입니다.

reporter@hojuonline.net
2013-11-22 13: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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