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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의 이민짬밥> 거소증과 코리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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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이란 걸 발급받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이 ‘증’이 주민등록증을 대신한다니 이제 신분 증명을 위해 매번 여권을 갖고 다닐 필요도 없고 체류 석 달 후부터 붙은 불법 체류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도 떼게 되었습니다. 

 

한국 온 지 어언 다섯 달, 거소증까지 받고 보니 20년 전 호주 시민권을 받았을 때의 감회도 잠깐 스치고 귀화 후 재귀화한 것 같은 과장된 감상에도 언뜻 젖어 듭니다. 거소증이 있건 없건 일정 기간 머물게 될 한국 생활에 큰 차이는 없을 텐데도 ‘증’에서 오는 묘한 느낌 탓입니다.

 

그건 그렇고 일을 보기 위해 출입국관리소를 두어 차례 찾아갔을 때의 정체 모를 생경함, 소외된 자들에 행해지는 무단(武斷)의 기미를 지금껏 떨쳐내지 못해 이 글을 씁니다. 중국 동포들을 대상으로 출입국관리소 주변에 어떤  울울한 거래의 분위기가 감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서글픈 느낌은 뭘까..,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중에  저를 조선족으로 오인한 ‘전단지 할머니’가 길을 막아서며 “바로 가 봐야 어차피 안 나와. 여길 먼저 찾아가요. 신체검사도 문제일 것 같은데? ” 하며 작은 쪽지를 불쑥, 그러나 은밀하고 낮은 음성에 실어 건넸습니다.   

 

한국 와서 ‘조선족 같다’는 소리를 더러 들어온 터라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출입국관리소부터 가 보구요, 나중에 들를게요.”라며 저도 천연덕스레 대꾸했습니다.

 

여느 전단지와는 달리 마치 ‘접근’을 시도하는 ‘삐끼’의 그것처럼 손에 ‘앵기’도록 쥐어주는데, 도대체 가 봐야 ‘안 나온다’는 것이 거소증을 말하는 건지, 찾아가라는 ‘거긴’ 또 뭘 하는 곳인지, 재중동포들은 신분 문제에 어떤 가려운 곳이 있기에 애를 태우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뭔가 법대로 안 되는 구석이 있으니 ‘해결사’들이 주위에 있을 테고, 모종의 편법이라도 있다면야 사람 사는 일에 그만해도 다행이며 어쨌거나 그런 수단이라도 있는 게 고맙기까지 할 테지만 찜찜하니 개운치 않은 여운 또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마주 오던 아주머니 하나가 “이제 한국 거소증도 나왔으니 좀 좋으냐,  우리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며  달뜬 연변 사투리로 누군가와 희망에 부푼 전화 통화를 합니다.

 

우리에겐 그저 무덤덤한 일상의 나라, 아니 무덤덤만 해도 다행이고, 온갖 불평 불만에, 비난과 남 탓에 죽겠다는 소리로 노상 아우성인 나라의 같은 시공간을 가르며 이렇듯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환희의 소리가 섞여들 수 있다니요.

 

권태, 나태, 태만의 타성에 금이 간 듯, 잊고 있었던 수치심이 자극되며 같은 거소증이라도 누군가에겐 이른바 ‘코리안 드림’이 막 점화되는 순간, 새 출발의 상징일 수 있다는 것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20년 넘게 남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라 해도 저의 호주 살이와 조선족들의 한국 살이를 같이 놓고 '더부살이하는 설움' 운운하며 감히 동병상련을 논할 처지가 아니기에  자괴감이 더 컸습니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받은 전단지 중 한 장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무심코 펼칩니다. 

 

<불법 체류 및 이혼 소송 후 불법 체류 특별 상담, 위장 결혼 입국, 한국인과 결혼 후 폭행, 별거, 금전 요구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경우 전문 상담, 일하고 돈 못 받거나 체불된 케이스, 부당 해고, 2백만 원 이상 벌금 징수 속 시원한 상담 및 해결>

 

한국에 와 있는 재중동포들의 시름겨움과 고통이 총망라, 집대성된 문구 앞에 아연해집니다. 아마도 앞서 말한 ‘해결사’들이 이런 류의 일을 맡아 해준다는 뜻이었나 봅니다.

 

다는 아니겠지만 특별 상담, 전문 상담, 속 시원한 상담, 나아가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들은 한국인들의 악한 의도와 악질적 행위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코리안 드림’의 희망으로 제 곁을 스쳐갔던 조선족 아주머니의 달뜬 목소리, 밝은 음색, 연변 사투리의 고저 장단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한국 생활만큼은 절망과 좌절로 얼룩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reporter@hojuonline.net
2013-12-06 15: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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