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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서 북한으로 간 세계 첫 해상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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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대보초 해상리조트'가 북한 '해금강호텔'로 둔갑
싱가포르->대보초->사이공->금강항 30년 1만4000km 여정 

 

호주는 한때 세계 최초의 해상호텔 보유국이었으나 문제의 해상호텔이 지난 30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싱가포르에서 호주로, 다시 베트남을 거쳐 북한으로 가는 1만4000km의 여정 끝에 금강산 자락에 정박,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호주공영방송 ABC TV와 페어팩스 미디어에 따르면 호주인들은 지난 1988년 초부터 퀸슬랜드주 극북부 타운스빌 앞바다 약 70km 지점의 존 브루어 리프(John Brewer Reef) 해상에 떠 있는 5스타 호텔에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

 

이 7층짜리 구조물은 객실이 거의 200개에 달하고 네온이 번쩍이는 나이트클럽에 술집과 식당들 그리고 헬기 이착륙장과 테니스 코트까지 갖추고 있었다. 19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타운스빌 해사박물관의 로버트 드 종 씨는 현재 이 해상호텔의 전시회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그야말로 바다에 떠 있는 호텔에서 산호초 위에 머물게 하는 세계 첫 시도였다"고 말했다.

 

이 호텔은 타운스빌 개발업자인 이탈리아계 이민자 더그 타카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별세했으나 그의 아들 피터 씨가 전시회 프로젝트를 돕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산호초 위에 떠 있는 호텔을 보는
것은 아주 경이로운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멀리서 보면 그냥 한 척의 배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아주 다른 구조물인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이 지역에서 매우 독특하고 세계에서도 이색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타운스빌을 지도 상에 확실히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원래의 계획은 안전한 정박지

 

더그 타카 씨는 오래 전부터 산호초 위에 항구적인 숙박시설을 짓는 꿈을 꾸어 왔었다. 피터 씨는 "부친이 산호초의 아름다움에, 그 경이로움에 매료되었다"며 "수중에 있든지, 위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떠 있든지, 그것이 바로 부친이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드 종 씨는 원래의 계획은 3척의 유람선을 그곳에 항구적으로 정박시킴으로써 산호초에 안전한 정박지를 만드는 것이었으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단됐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맡은 회사(Barrier Reef Holdings)는 대신 해상호텔을 짓기로 했다. 세계 최초의 해상호텔을 짓는다는 신기함이 큰 매력 포인트였다. 수리를 위해 부두에 댈 필요가 없는 안정된 시설을 갖추고 산호초에 항구적 접속을 제공한다는 아이디어도 그러했다.

 

드 종 씨는 "설계가 끝나고 1986년에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회사에 건설공사가 발주됐다"고 말했다. 공사가 다소 지연되고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자세한 것은 불투명하지만 당시 가격표는 4000만불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1987-88년 여름에 '대보초 해상 리조트'(Barrier Reef Floating Resort)가 싱가포르에서 대보초까지 5000km 이상 예인돼 왔다. 거대한 중량화물 기중기선에 실려 왔고 드디어 1988년 3월 손님들에게 호텔이 개장됐다.

 

벨린다 오코너 씨는 손님들을 호텔로 실어나르는 수상택시에서 일했다. 당시 그녀가 처음 본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호텔에서 지내며 낚시여행을 가고 승무원 파티, 호텔 밑으로 다이빙하기, 헬기로 피자 공수해 오기 등 멋진 나날을 보낸 것을 기억한다며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고 말했다.

 

호텔에서 일한 루크 스타인 씨는 "내 생애 최고의 직업이었다. 나는 걷고 수영하고 햇볕 속에 있으면서 봉급을 받았다"며 "당시를 되돌아보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내가 꿈을 꾸고 있나'라고 생각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실험적인 벤처 사업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문제가 없지 않았다.

 

사이클론과 험한 풍랑

 

해상호텔이 문을 열기 전에 사이클론이 덮쳤다. 라리사 킬컬른 씨는 당시 19세 나이로 여종업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배 가득 태운 손님들이 심한 풍랑 때문에 멀미를 하면서 도착하여 다시 타운스빌로 태워 보내야 했다"며 "풍랑이 워낙 심해서 배 한쪽에서 반대쪽까지 기어서 가야 했다"고 회상했다.

 

놀랍게도 호텔의 본 구조물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고 수영장만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킬컬른 씨는 "거의 매번 오고 갈 때 멀미를 했지만 일단 호텔에 들어가면 괜찮았다"고 말했다.

 

피터 씨는 악천후가 종종 본토와의 연결에 차질을 빚었다면서 "도착 후 두어 해 동안은 기상이 눈에 띄게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이내 손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당시 일부 기자들은 빈약한 마케팅과 경영 부실 문제를 지적했으며 게다가 수상택시 한 대가 불이 나는 바람에 재정난을 더해 주었다. 

 

드종 씨는 "아마도 시대에 좀 앞서 갔던 것 같다.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고 했다.


베트남 거쳐 북한으로 가다

 

현금이 고갈되자 해상호텔 소유주는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다른 회사에 호텔을 팔았다. 그래서 개장한 지 1년 남짓 만에 호텔은 5000여 km에 달하는 또 다른 여정에 올랐다.

 

드 종 씨는 베트남에 전후 관광붐이 일어나면서 해상호텔이 호화 숙박시설을 급히 마련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호텔은 사이공 수상호텔로 개명되어 1989년부터 1997년까지 베트남 영웅 쩐흥다오의 동상 바로 옆의 사이공강에 정박해 있었다. 이는 인기있는 숙박지 명소가 되었고 나이트클럽이 2곳이나 들어섰다.

 

이 수상호텔은 일본의 한 개발업체가 자금을 대고 호주의 서던 퍼시픽 호텔이 서비스와 직원을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시 재정난을 겪으면서 새로운 구입자에게 팔렸다. 사이공 데일리라는 블로그에 따르면 이 호텔은 현대아산에 의해 북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름은 해금강 호텔로 바뀌었다.

 

드 종 씨는 "역사적으로 남북한 관계에 유화와 해빙의 시기가 있었을 때 북한으로 옮겨간 것 같다"며 "북한에서 이 호텔이 관광객 유치에 적합할 것으로 생각됐으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 호텔은 여전히 북한의 금강항에 자리잡고 있다. 위성 이미지를 통해 보면 희미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에릭 라포그 씨는 2009년 이곳 금강산 관광마을을 방문하여 멀리서 호텔사진을 찍었다. "여러 해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것 같다. 문이 잠겨 있었고 멀리서 녹슬어 보였다"고 말했다.
 
타운스빌은 산호초 관광의 개척자인 더그 타카 씨의 쌍동선 첫 항해 35주년에 맞추어 오는 10월1일 해사박물관에서 해상호텔을 포함한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연다.

reporter@hojuonline.net
2018-07-24 1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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